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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일기] 2003-2004년 인도 배낭여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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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스토리 [3-2]

  • 인천- 방콕(경유)- 뉴델리(델리)- 자이푸르- 자이살메르- 아그라- 오르차- 카주라호- 바라나시- 캘커타- 다즐링- 델리- 방콕(경유)- 인천
  • 40일 배낭여행
  • 2003년 12월 말 ~2004년 2월 초

(오르차, 카주라호 이야기)

오르차는 "숨어있는 곳" 이라는 뜻 답게 인도의 숨은 보석과 같은 곳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의 분위기인 오르차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뭔가 숨통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의 인도는 복잡하고, 정신없고, 혼란, 카오스, 시끄러운 인도의 모습 뿐이었는데..(사막 빼고..) 오르차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휴양지의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너무 순수하고, 많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미소만 지어주었다. 그 어떤 삐끼나 달라붙어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카주라호를 가기전 잠깐 들러본 마을이었는데.. 정말 잠시 쉬어가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고대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다가 빼어난 자연경관은 충분히 볼거리 또한 제공해주었다. 

오르차는 그저 조용히 거닐며 도시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오르차를 떠나 카주라호로 향했다. 카주라호에는 19금 사원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주라호 사원의 벽면에는 남녀의 성적 결합을 표현하는 부조가 조각되어있다. 자세히 보면 자세들이 다 다르고 표정까지 다름을 볼 수있다.

처음 본 이런 조각들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좀 받았지만.. (이 때만해도 참 어렸구나 ^^) 

그래도 언제 이런걸 보겠냐며 언니들이랑 신나게 구경했다. 

카주라호 또한 오르차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붐비지 않는 작은 도시였다. 그래서 우리는 자전거를 빌려 도시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로 시골길을 달리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중간에 어떤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모든 아이들이 합장을 하며 "나마스떼"를 외친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인도의 아이들은 눈망울이 크고, 속눈썹이 길며, 얼굴이 진짜 작다. 진짜 이쁘게 생겼다. 

선생님이 사진 찍어도 좋다고 해서 같이 사진도 찍고 놀다가 나왔다. 이런 경험은 진짜 배낭여행으로만 해 볼 수 있는 경험인 것 같다.

너무 여유로웠던 오르차와 카주라호를 뒤로 한채.. 다시 혼란의 도시...역대 최고라 자부할 수 있는... 바라나시로 향했다.


(바라나시 이야기)

바라나시에 도착한 우리는 일단 갠지스 강 근처로 갔다. 바라나시는 갠지스 강을 끼고 있는 도시인데 힌두교의 대성지이기도 하다. 

갠지스 강 근처에 숙소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일단 숙소 골목에서 삐끼와 협상을 해보기로 했다. 

어떤 소년과 협상끝에 우리를 숙소로 데려가는데 골목 골목 미로같은 곳이다. 불안불안..

처음엔 몰랐는데 강가 근처엔 미로같이 복잡한 골목들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사는 집, 여행자들이 지내는 숙소, 레스토랑, 카페까지 다 들어서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린 잠시 인터넷을 사용해야해서 인터넷 카페를 찾았다.

모뎀 (전화로 연결하던 인터넷 시절...) 속도만한 속도로... 느릿느릿 메일을 확인하고, 한국의 가족들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인터넷 카페 입구로 부터 들리는 지나가는 곡소리와 종소리... 

하루에도 수십구의 시신들이 갠지스 강 근처에서 태워지고 뿌려진다. 그 중의 한 시신이 그 골목을 통해 강가로 내려가고 있었다. 

인터넷을 마치고 우리는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터로 향했다.

인도인들.. 힌두교인들은 죽으면 갠지스강에 뿌려지는 것을 평생 소원이라고 한다. 그래서 항상 화장터에는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들이 줄지어있다. 

화장하는 순서, 방법 등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고, 매캐한 연기는 덤.. 

마침 시신 한 구가 내려와 화장 의식을 시작했다. 천으로 감싸진 시신은 갠지스강에 몇번 담궈진 뒤 나무가 높이 쌓여진 제단같은 곳에 올려진다. 

그리고 나무에 불을 붙이고 시신은 화장이 된다. 

그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같이 간 언니는 못보겠다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시선을 떼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화장터는 신성한 곳이므로 사진 촬영 안되고, 떠드는 것도 안된다. 죽은 자에 대한 매너는 지키자.)

시신 한구가 다 태워지려면 3-4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나는 1시간 정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물론 시신만 뚫어져라 본게 아니라 강가의 모습.. 태워지는 연기, 불꽃, 주위 모습들을 눈에 다 담아가면서 말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인 생각도 잠깐 해보면서.. 흐르는 강물이 흘러가는 인생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도 해보면서... 

그렇게 나의 시간이 흘러갔다.

갠지스 강 보트투어가 있어서 신청을 했다. 배를 타고 강 상류에서 하류로 왔다갔다 하는 건데 강에서 바라본 바라나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하다.

보트를 타고 출발했는데 강에는 온갖 오물들이 둥둥 떠있다. 나는 개의 시체도 봤다...ㅠㅠ 

들리는 바에 의하면 어린 아이는 죽으면 화장을 하지 않고 돌에 묶어 강에 빠뜨린다는 소리도 있던데... 이 물 밑에 어린아이 시신이라도 있는게 아닐까 괜히 긴장을 하기도 했다.

강 가에서 본 충격적인 모습 중 하나는, 시신을 물에 담그고, 화장된 시신의 가루를 보내고, 그 옆에서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갠지스 강물이 성스러운 물이라고 한다), 양치도 하고, 아래 쪽으로 내려가니 빨래터까지 나온다. OMG! 이걸 보고... 바라나시에선 절.대.로. 세탁서비스를 시키지 말자고 다짐했다. 

투어가 마치고, 시장 쪽으로 나가보았다. 그렇치!! 여기가 바라나시지!! 정신하나도 없는 혼란스러운 도시..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한 곳은 천국인 마냥 경건하게 사후 의식이 치뤄지고, 한 곳은 지옥처럼 아수라장이라니...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너무 복잡한 바라나시가 싫어져서 얼른 캘커타 지금은 콜카타라고도 하는 동쪽 도시로 향했다.


(캘커타 이야기)

캘커타.. 인도 대륙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서쪽 끝 자이살메르에서 결국 여기까지 횡단을 하였다. 감개무량..ㅠ

캘커타는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곳. 그래서 그런지 유럽 스타일의 건축물들이 아직 남아있다. 

인도가 참 넓긴 넓구나.. 캘커타도 여태 봐 온 인도랑 분위기가 또 달랐다. 복잡하긴 했지만.. 건물들이랑 분위기가 뭔가 달라..

캘커타에서 유명한 건 마더 테레사 하우스와 칼리사원이다.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웬 마더 테레사 수녀?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힌두교도에게서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카스트 제도가 분명한 인도에서 그녀는 그저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는 사상이나 종교,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를 똑같이 어머니가 자식을 품 듯 품었다. 그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져 아직까지도 힌두교도인들은 자신의 신에게 하듯 마더 테레사를 그리워하고 기도를 한다. 

칼리 사원. 피의 신인 칼리의 사원이다. 정말 근처에만 가도 피 비릿내가 진동을 한다. 

100년 전까지는 사람이 산 채로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염소나 닭을 제물로 바친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꽃 목걸이를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있다. 우리는 그들을 무시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온 사람들의 제물이 바쳐지고 있었다. 많은 염소들이 구석에서 음메 음메 하고 있었고, 그 중 한마리가 단두대에 올려졌다.

염소를 바친 사람이 기도를 하고, 의식을 행하는 자가 어떤 주문을 외우는 듯 하다가 그대로 염소의 머리를 칼로 내려친다.

순식간에 염소의 머리와 몸통은 분리가 되었고, 바닥은 피로 물들었으며 분리된 몸통은 아직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대로 보게 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흘러나오는 염소의 피를 제물바친 사람의 이마에 바르고... 떨어진 머리를 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OMG...

같이 간 언니는 울먹거리며 너무 비위가 상해 다른데로 가버렸다. 나는 이 후 세마리를 더 보고 돌아섰다. (그냥.. 어떻게 하다가 계속 보게되었다..)

충격의 칼리 사원을 뒤로 한채, 캘커타 유럽풍의 거리를 거닐어보았다. 

어느 덧 여행의 막바지로 접어 들어 가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이제 마지막 여정지인 다즐링으로 향했다.


(다즐링 이야기)

다즐링 티로 유명한 다즐링은 인도의 홍차 생산지의 하나이다. 세계 3대 홍차라고도 불린다. 

다즐링은 인도 북동부 히말라야 산맥의 네팔, 부탄, 시킴주 접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가는길이 조금 험난했다. (버스이동)

인도보다는 네팔이나 티벳의 느낌이 더 비슷한 다즐링 마을. 산 중턱에 자리잡은 넓은 차 밭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간 날은 안개가 많이 껴서 앞을 보기 힘들기도 했다. 이런 날씨와 이런 분위기는 또 처음.. 인도는 어딜가나 어메이징 서프라이즈한 나라인 것 같다.

벌써 여행한지 한달이 넘어가고 이제 마지막 여행지였던 다즐링이라 그런지 뭔가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나름 아껴왔던 돈은 여기서 먹는데 많이 썼다. 뭔가 나무도 많고, 산이 있고, 조용하고, 운치있는 마을이라 휴양지에 온 느낌이었다.

언니들이랑 그동안의 일정을 되새겨보고, 재미있었던 일들을 다시 얘기해보면서 여기까지 무사히 건강하게 올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이제 다즐링에서 다시 뉴델리까지의 이동만 남았다... 가자 델리로..! 


(마무리)

다시 델리로 왔다. 다시 빠하르간지로 왔다. 두번째 오는 빠하르간지가 익숙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겪었던 인도의 모습 자체가 익숙해져버린 것인지.

뭔가 익숙하게 우린 숙소를 정했고,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고, 쇼핑을 하고, 귀국할 짐을 쌌다.

40일 동안 언니들과 함께 한 인도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터키, 그리스에서 만난 인연으로 인도 여행까지 함께 하게 된, 더 특별해진 인연. 

40일 동안 셋이서 한번도 의견 다툼없이 서로를 배려하고, 의지하며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들!!

정말 잊지 못할 평생의 추억을 갖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


인도는 정말 미지의 나라이면서 매력이 넘치는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40일동안 본 인도는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땅도 넓고 다양한 민족, 문화들이 있는 나라이기에.

인도가 위험하진 않은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텐데, 어느 나라나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대신 여행을 할 때, 자기 룰을 만들어 놓는게 중요한 것 같다. "밤에는 나가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먹지 않는다."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왠만하면 혼자 다니지 않는다." 등등.. 

언니들과 나는 다행이 이런 부분들이 서로 잘 맞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 여행은 어디로 떠날 지 또 다른 꿈을 안고 무사히 귀국했다.



아래 사진들은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 업로드 해놨던 것들인데, 폰카로 찍어서 첨부해보았다.

벌써 15년이나 지난 사진들...

길을 걷다보면 사진 찍자는 사람들이 많다. 외국인이 신기해보이는지... 

여자, 어린아이들과는 거부감없이 많이 찍었다.

​오르차 풍경


카주라호 사원 (feat. 19금 조각상)

​다즐링 거리.


인도의 흔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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