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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행일기] 2005-2006년 인도/ 네팔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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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스토리 [6]

  • 인천- 카트만두- 포카라- 카트만두(네팔)- 델리- 아그라- 엘로라- 아잔타- 뭄바이- 고아- 델리(인도)- 카트만두(네팔)- 인천
  • 40일 배낭여행
  • 2005년 12월- 2006년 2월

엄마랑 네팔에 가게 된 이유는 오빠가 코이카 KOICA라는 한국 국제협력단의 협력요원으로 파견을 나가있었기 때문이었다. 

네팔에 간 김에 엄마랑 단 둘이 인도 배낭여행도 가보자 하는 계획도 짜게 되었다. 

오랜만에 오빠를 보러간다는 것도 좋았지만, 네팔 히말라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훨씬 더 좋았다.

엄마는 먹을 것부터 오빠가 필요하다고 한 모든 것을 준비해 이민가방 두개를 꽉꽉 채우기 시작했다. (호빵에 던킨도너츠까지 사가지고 갔으니...)

오빠가 네팔은 꽉 잡고 있고, 나는 인도여행을 한번 해봤으니까 이번 여행 또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


(카트만두 이야기)

오빠는 포카라 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를 데리러 카트만두로 왔다. (버스로 7-8시간 걸리는 거리)

오랜만에 본 오빠는 네팔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네팔어도 잘하고, 뭔가 분위기가 네팔리였음 ㅋㅋㅋㅋ)

여행자 거리라고 불리는 터멜 거리에 도착했는데 인도의 빠하르 간지보다 나름 깨끗했고 사람들도 적었다. 공기가 나쁜건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네팔사람들... 진짜 인도 사람들보다 100배는 더 친절하고 착하다. 순수하다.

카트만두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 많이 있는데 시내와 외곽을 찬찬히 둘러보면 된다. 

외곽을 보러갈 때 택시를 탔는데 우리가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씌우려다가 오빠가 네팔어로 뭐라하니까 바로 미터기를 켠다. (오빠는 완전 현지인이었음.)

더르바르 광장이라는 젤 유명한 왕궁이 있었는데 새 공포증 (특히 비둘기) 인 나는 수많은 비둘기 떼들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좀 심각하게 새 트라우마가 있어서 푸드득 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몸이 움츠려든다.

(정말 극복하고 싶은데 이게 20년 전부터 생긴거라.. 극복이 쉽지 않다..ㅠㅠ)

아무튼 무시무시한 비둘기 떼들 때문에 나는 혼자 지나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거리는데 (엄마랑 오빠는 쿨하게 날 버리고 가버림) 

네팔사람들이 발로 툭툭 비둘기를 쫓아주기 시작한다. ㅠㅠ 너무 고마웠다. (엄마랑 오빠는 앞에서 한숨쉬고 있었음...ㅠ)

온 신경은 비둘기에 가 있어서 대충 사진만 찍고, 쿠마리 사원으로 갔다.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기 전의 여자아이를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쳐 살아있는 신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들에겐 종교이겠지만 아이의 인권은 아예 없는..  그런 것이다. 

신전에 쿠마리를 가둬놓고 (내 느낌은 갇혀있는 듯 했다..) 사람들이 오면 은혜를 베풀고, 무슨 날에는 가마를 타고 거리행진도 하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저 조그만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다. 저 아이도 뛰어놀고 싶을텐데,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면 신의 자격이 박탈 당한다. 요즘에는 학교도 다니고, 결혼도 해서 잘 사는 전직 쿠마리들도 있다고 하는데, 

예전만 해도 쿠마리와 결혼하면 불행으로 끝난다는 속설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쿠마리가 더 많았다고 한다. 

2015년 4월, 네팔에 대 지진이 일어나 더르바르 광장 등 많은 유네스코 문화유산들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내가 본 모습이 이제는 볼 수 없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지진 이후 복구는 잘 되었는지 궁금하다. 

(네팔 지진이 났을 때 내가 가본 곳들이 처참히 파괴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오빠 찬스로 편하게 카트만두 여행을 하고, 포카라로 이동했다.


(포카라 이야기)

오빠가 항상 자기가 살고 있는 집 옥상에서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자랑해왔다. 사진 이름은 "우리집 뒷산" 

뒷산이 히말라야라니..!! 사진으로 보니 진짜 너무 멋있었고 가보고 싶었다. 

결국 그 뒷산을 보러 왔다.

정말 오빠 집 옥상으로 가니 히말라야 산맥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진짜 장관이었다. 집 옥상에서의 뷰가 이정도라니!! 

포카라는 오빠가 살고 있는 곳이라 뭔가 더 정겨운 느낌이었다. 

살고있는 동양인이 별로 없어서 기념품 가게 주인들도 다 알고, 식당 사장님도 알고, 무슨 동네 유지인 줄 알았다. 

1월 1일 새해에는 사랑코트에 가서 일출도 보고 (여기서 오빠는 DSLR 카메라를 떨어뜨려서 고장을 냄), 

박쥐동굴도 가고, 마운틴 바이크를 타고 산악 트래킹도 했다. 

동네 애들에게 과자랑 사탕도 쥐어주고, 슬렁슬렁 시장에 나다니기도 했다.

폐와 호수를 끼고 패러글라이딩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날씨와 시간이 안 맞아서 못한건 평생 후회로 남았다.

포카라에서는 여행을 왔다기 보다 그냥 오빠 사는 동네에 놀러와서 잠깐 쉬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인도 배낭여행을 가려면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가야했다.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엄마랑 단 둘이 내가 잘 할수 있을까...


(델리. 아그라 이야기)

카트만두 공항을 가는 길에 택시기사랑 실랑이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도 없고 온전히 지도로만 길을 찾던 시대라.. 

나는 택시를 타면 지도를 펼쳐놓고, 이 택시가 돌아가지는 않는지 대충 길을 체크하는 습관이 있었다. (미터기로 갈 경우)

처음에 흥정을 하다가 나는 미터 아니면 안간다하니 미터를 돌려놓고 은근슬쩍 할증 버튼을 누르다가 나한테 딱 걸렸다.

내가 차 세우라고 소리지르고, 택시기사는 모르는척 했지만 내가 할증 켜는거 봤다며 난리난리를 치니 다시 원래 버튼을 눌렀다.

엄마는 놀래서 아무말도 못하고 나는 분에 못이겨 씩씩 거렸는데... 나중에 내릴 땐 그냥 돈 더 주고 내렸다. 

(그래봤자 몇백원이었는데 내가 너무 인색했나 싶기도 해서...)

조그마한 경비행기 같은걸 타고 인도 델리에 도착했다.

인도를 내가 두번째 오다니..!! 다시 올거라곤 상상해보지 않았는데...처음보단 두려움이 확실히 덜하긴 했다.

택시도 자연스럽게 잡아타고, 나 여기 두번째 온다 가격 다 안다하니 아무말 안하고 조용히 간다. (역시 경험은 무시 못하는 것!!)

빠하르간지 거리에 도착해서 숙소를 구했는데 너무 열악한 숙소를 구해서 엄마한테 한소리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엄마랑 왔는데 돈을 좀 더 쓸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숙소를 옮기긴 했지만 엄마는 충격적이었나보다. 아직도 인도 얘기만 나오면 그 숙소얘기를 하는 걸 보면...

나는 모든 관광지가 두번째로 방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엄마 위주로 돌아다녔다. 제일 중요하고, 봐야하는 것들을 뽑아서 돌아다녔다.

솔직히 인도는 호불호가 강한 나라이다.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하거나. 다행이 나는 좋아하는 쪽이었기에 또 왔겠지.. 

하지만 엄마가 너무 싫어하게 되면 중간에 여행을 포기해야 하나 어쩌나 여러가지 생각과 걱정이 들었다. 

내 걱정과는 달리 엄마는 여행을 너무 즐겁게 즐겨주셨다. 

내가 타지마할은 무조건 꼭 봐야한다며 아그라로 향했다.

비싼 타지마할 입장료였지만 나는 여기는 두번봐도 후회 없을 것 같아서 엄마랑 같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타지마할은 두번째인 나에게도 똑같은 감동을 주었다. 진짜 너무 예뻤다. 엄마도 엄청 좋아하심.. 너무 멋지다며..

아그라까지 간 다음에는 남쪽으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남쪽은 나도 처음이라... 아그라 이후로는 계속 긴장상태 유지..!!


(엘로라, 아잔타 이야기)

엘로라와 아잔타는 동굴로 유명하다. 이곳을 여행하려면 아우랑가바드라는 도시를 기점으로 하면 된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잔타 석굴은 예전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들어본 듯도 하다.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은 모두 불교 석굴이다. 돌산 절벽에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겨넣었다. 

돌 들을 파내고 여러개의 동굴로 만드는 것도 어려워 보이는데 그안에 정교하게 불상까지 조각해 놓다니.. 

규모가 상당히 큰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 불교가 꽤나 큰 파워가 있었던 듯 하다.

외국인 뿐만 아니라 인도 현지인들도 관광하러 많이 와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잔타보다 엘로라가 내 눈에는 더 멋져보였다. 

인도는 힌두교 성지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불교 영향을 받은 곳도 상당히 있다고 한다. 

땅이 넓은 만큼 인종, 종교, 문화 모든게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게 인도의 매력이다.


(뭄바이 이야기)

인도 서해안의 최대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은 뭄바이는 영국 스타일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캘커타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웅장한 느낌의 건축물이 많이 있었다. 

인디아 게이트 근처에 엄청 웅장한 호텔이 하나 있는데 타지마할 호텔이다. 이름처럼 엄청 화려하고 큰 최고급 호텔이다. 

'타타'라는 인도 자본가가 유럽에 가서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호텔 출입을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은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뭄바이는 남쪽이라 그런지 북인도와는 다르게 습하게 더웠다. 

도비가트라는 인도에서 가장 큰 빨래터가 있다. 도비는 빨래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신분이 낮지만 각자 맡은 영역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최대 무역항답게 큰 배들이 정박해있고, 다른 곳은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널어 놓거나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극과 극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뭄바이에서도 택시기사랑 한번 싸운 적이있는데 갈때 150바트였던 거리가 올때 500바트라고 해서 택시기사랑 실랑이가 붙었다.

내가 인도 여행 두번째고, 아까 조금전엔 150바트였는데 왜 너는 500바트냐고 따지니 300바트라도 내라고 막무가내다.

하도 열받아서 200바트만 주고 내려버렸다. 내리는 과정에서 살짝 한국말로 욕을 했는데 그걸 엄마가 옆에서 듣고 나의 이런 모습을 처음본다며..

그래도 욕은 하지말아야지~ 이러신다. 

(솔직히 엄마가 옆에 있는걸 잊어버렸다. 근데 이 일이 있고 난 뒤 엄마는 내가 보통이 아닌 애라며 나는 어딜가나 당차게 잘 살 애라고 하셨다.)

대도시를 벗어나 이제 휴양도시로 가보자. 인도의 휴양지 고아이다.


(고아 이야기)

인도의 곳곳이 영국의 지배를 받은 것에 반해 고아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포르투갈 특유의 건축물들이 남아있었다.

고아에 온 이유는 단 하나. 휴양.

안주나 비치 근처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 하나를 찍어놓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 레스토랑에서 먹고싶은거 다시키고 하루종일 앉아있어도 각자 만원이면 충분했다.

해변의 모래사장과 야자수가 동남아의 어느 휴양지의 모습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인도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여긴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 파라다이스~!!

밤이 되면 여기저기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비치 파티가 열리는데, 나는 아쉽게도 엄마랑 가서 그냥 숙소에서 일찍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고아의 해질 녘 노을은 정말 장관이었다. 붉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엄마와의 여행을 마무리 지었다. 


(다시 델리를 거쳐 카트만두로..)

침대칸 기차를 타고 하염없이 달려 다시 델리로 왔다. 또 빠하르간지다. 

뭔가 인도에 있으니 빨리 네팔에 가고 싶기도 했다. 인도와 네팔은 비슷한 듯하지만 달랐는데 나는 네팔이 더 좋았다.

델리에 올 때 탔던 쪼그만 경비행기를 타고 다시 오빠가 있는 카트만두로 향했다. 

(오빠는 원래 포카라에 있어야 했는데 내전 시위같은게 생겨서 국민 보호차원으로 네팔의 코이카 요원들은 모두 카트만두로 집결해 있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도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오빠가 될 수 있으면 비행기 표를 당겨서라도 일찍 한국으로 가라고 해서 이틀정도 앞당겨 출국했다.

오빠는 2년의 의무기간을 다 채우고 한국으로 무사귀환 했다.


(마무리)

오빠가 네팔에 있어서, 어떻게 겸사겸사 네팔과 인도 여행을 할 수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인도와 네팔이라는 나라가 쉽게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곳을 여행했다는 것 자체로도 성취감이 컸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함께 잘 걸어주신 엄마도 대단하고, 이번 여행을 통해 엄마가 직접 내가 어떤식으로 여행하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위험하게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을 믿게 되심.)

엄마랑 이렇게 배낭을 짊어지고 한달 넘게 여행을 언제 또 할 수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가 체력이 계속 된다면 또 도전하고 싶기도 하다. 

(솔직히 엄마랑 코드가 너무 잘 맞았으므로. 만족!!)




아래 사진들은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업로드 했던 것들인데, 폰카로 찍어 첨부해보았다.


​네팔 히말라야 산맥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진..!


​네팔 전통의상인 꾸르따 수르왈. 오빠가 사줌.. (나름 사이즈 재서 만든 맞춤 옷)


​카트만두 더르바르 (왕궁) 광장.


카트만두 보우더나트. w/ 브라더

​뭄바이.


고아 Goa.

​엘로라. w/ 엄마.


​두번째간 아그라 타지마할.


델리. 꾸뜹미나르. w/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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